이원우,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2013. 사진: 김상태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김성원

열람 시간: 15분

위급함을 고양시킨 목소리가 오디오를 타고 흘러나온다. 연이어 일어나는 화재와 수해, 테러, 성 착취와 추행, 아동 학대, ‘심신미약’, ‘우발적’의 수식이 붙는 인명 사고들, 묻지마 폭행, 정치적 강압과 인종차별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동요된 이들의 술렁임이 일상을 헤집어 놓고, 확신에 찬 목소리들은 판단을 유보할 틈을 주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듣고 있는 것에는 실체가 없고, 우리는 점점 고립에 가까워진다. 소란스런 피로사회는 듣지 못한다.1

미디어의 과용이 깊은 사고를 막고 나아가 어떤 접촉이나 개입 의지를 제거하는 것처럼 아트선재센터는 상세한 텍스트나 안내 서비스 등 전시 안팎의 정보 제공이 비대해지는 현상이 도리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전시를 경험하고 작업에 몰입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그리고 2014년에 이러한 고민을 투영한 전시를 기획했다. 외적인 부분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양을 최소화하고 그만큼 관람자의 경험과 해석에 기대는 작업들을 소개하였고, 실제로 관객들은 리플렛으로부터 명확한 플로어플랜도, 동선도, 구체적인 설명도 얻을 수 없었다. 전시는 삼청동의 인적이 드물어지는 시간이자 대다수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인 6시부터 8시까지 오직 두 시간 동안 진행한다는 의미를 담아 6-8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되었다. 전시에는 로와정, 리경, 염중호, 이악(권병준, 김근채, 이은상, 전유진, 윤수희, 배민경), 이원우가 참여했다.

그 무렵 아트선재센터는 시설 보수와 1층에 위치한 라운지 공사에 착수했다. 공사 기간 동안 전시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전시장 입구, 한옥, 기계실, 옥상, 사무실 복도 등 전시장을 감싸고 있는 유휴 공간들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는 주차장 프로젝트, 라운지 프로젝트, 카페 프로젝트, 한옥 전시 등 기존의 공간을 탈피하는 프로젝트를 이전에도 여러 차례 진행한 바 있는 아트선재센터에 있어 전시 공간을 다변화하고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시도였다. 작가들은 아트선재센터에 방문해 공사 중인 곳을 제외한 곳곳을 살펴보고 작업이 놓일 만한 장소를 골랐다. 전시 공간은 하나 둘씩 정해졌지만 시간에 따라 기우는 빛과 그림자,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과 바람, 먼지 등 자연적인 제약과 구조적인 특성으로 인해 작가들은 대부분 장소 특정적인 작업을 새로 구상하고 준비해야 했다.2

로와정, 떠있는 말, 2014. 사진: 김상태

로와정은 특히나 아트선재센터의 기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시장에 오면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되는 기물이자, 진행 중인 전시에 관한 가장 절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추려 외부에 드러내는 라이트박스에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어 의미를 알기 힘든 단어들을 배치했다. 이 단어들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3 에서 인용한 것들로 대부분 말이 안되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떠있는 말, 2014) 반대편에는 아트선재센터 내 레스토랑의 폐업으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발레파킹 부스가 있었다. 로와정은 그 안에 화려한 미러볼을 달고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1악장’이 흘러나오도록 했다.(파티타임잡, 2014) 아무도 연주하는 사람이 없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악기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슈베르트가 작곡했다고 전해지는 이 곡은 사라진 발레파킹 근무자들의 물건들만 덩그러니 남은 빈 자리를 더듬는다. 로와정은 아트선재센터 건물 뒤편을 비추는 작은 야외등에서 누군가의 집을 상상하기도 한다.(인형의 집으로 와요, 2014) 밤이 되면 불이 켜지는 야외등의 모습은 언뜻 어린 아이가 그린 상상의 집 모양을 닮았다. 그 안에 땅따먹기를 하는 소녀, TV를 보는 노인의 뒷모습과 같은 여느 집의 저녁 풍경이 그려졌다. 명료해야 할 곳이 흐릿하고, 쓸쓸한 곳에 파티가 열리고, 어둠이 차야 보이기 시작하는 로와정의 작업들은 의도적으로 우회하고 비틀어 언저리를 매만진다.

로와정, 파티타임잡, 2014. 사진: 김상태
로와정, 인형의 집으로 와요, 2014. 사진: 김상태

주로 일상에서 보여지는 사물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염중호는 환풍구, 배수구, 엘리베이터, 계단 밑과 같이 눈여겨보지 않는 장소에 설치 작업 소원을 말해봐(2014)를 선보였다. 염중호는 어딘가에서 주워온 돌, 그렇지 않으면 가짜로 만든 돌을 환풍구 사이에 끼워두거나 계단 밑에 쌓아두었다. 사물은 막연히 정지된 대상이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담는다는 히토 슈타이얼의 말처럼 염중호가 가져다 둔 사물들은 그 자리에서 제3의 시선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앞을 지나치고 멈추어서 인식하는 불특정 다수에 의해 수 개의 갈래로 읽히고 해석된다. 작업이 가진 메시지를 둘러싼 의문에 대한 답은 역설적으로 관람객의 몫이 되고, 스스로 그 답을 도출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소원을 떠올리는 것,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염중호, 소원을 말해봐, 2014. 사진: 작가 제공
염중호, 소원을 말해봐, 2014. 사진: 작가 제공

한편 권병준, 김근채, 이은상, 전유진, 윤수희, 배민경으로 구성된 소리 중심의 프로젝트 그룹 이악(‘이것도 악기일까?’의 준말)의 멤버들은 기계와 사운드를 이용한 작업들을 아트선재센터 주차장과 기계실, 엘레베이터 앞, 직원용 공간 등에 숨겨두었다. 그 가운데 배민경의 작업 자잘 노래(2014)는 직원들이 사용하는 복도 한 구석에 놓여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만 잡동사니들이 실에 매달린 채 작은 떨림과 소리를 일으키며 목적지를 향해 조금씩 이동하는 설치 작업이었다. 배민경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잘한 것들이 이어지고 감기면서 발생하는 소리를 노래로 감각하기를 제안한다. 마치 카세트테이프를 연상시키듯 마침내 감기기를 멈춘 잡동사니 타래들이 다른 한 편에 진열되어 있다.

이악(배민경), 자잘 노래, 2014. 사진: 김상태

기계 전문가 김근채와 사운드 아티스트 권병준의 서울 비추기(2014)는 탁 트인 옥상에서 손전등을 사용하는 사운드 설치 작업이었다. 손전등은 움직임의 방위를 입력 센서와 묶어 방향에 해당하는 소리를 연결된 헤드폰으로 출력하도록 특수하게 제작되었다. 아이들 웃음 소리,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 은행의 돈 세는 소리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채집된 소리는 변형되거나 증폭되어 방위에 따라 재배치된다. 관객이 손전등을 하늘에 대고 이곳 저곳 비추면 익숙한 감각으로 자리잡은 서울 풍경이 헤드폰을 경유하며 낯선 공간에 온 듯한 생경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악(권병준, 김근채), 서울 비추기, 2014. 사진: 김상태

숨은 작업들을 발견하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옥상에 다다른다. 이원우는 온실 안에 들어서면 안에서도, 밖에서도 보이지 않는 연기에 휩싸이도록 한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2013)를 옥상 한 가운데 설치했다. 그 ‘반대’란 세상이 사라졌으면 하는 것인지, 실은 절박하게 드러나고 싶다는 내밀한 표현인지 작가의 말장난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옥상에 설치한 온실은 TV 속 진행자가 연기와 함께 펑 사라져 버리는 식의 어색한 연출과 CG 처리를 연상시키며 실소를 더한다. 옥상은 평소에는 굳게 닫힌 기계실을 통과해서 올라와야 했는데, 아트선재센터가 본래 기무사 뒤편에 위치하는 탓에 보안상 옥상 개방이 불가했으나 이 무렵 기무사 터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하여 개관하게 되면서 외부에 개방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옥상에 올라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겠다는 결기를 품고 들어갔다가도 온실로부터, 사라짐으로부터 다시 멋쩍게 나오는 것이다. 이정도면 됐어, 하고. 관객의 참여가 더해지면서 완성되는 이원우의 퍼포먼스성 작업은 3년 뒤 2017 아트선재 프로젝트 #4: 이원우 - 무도장의 분실물 센터(2017.8.12-8.23)로 이어진다.

이원우,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2013. 사진: 김상태

6-8은 아트선재센터가 내부 공사로 인해 전시장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이를 기회로 전시를 여는 주체로서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고민과 가능성을 실험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아마도 관계자들은 전시가 진행되는 단 두 시간동안 관람자의 몫을 최대한 남겨두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변수들을 컨트롤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밤이 되어 고요한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작업과 관객 사이의 크고 작은 틈에서 힘껏 사유할 수 있었다. 작가와 관객이, 전시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채워넣은 이 전시로부터 어떤 결론을 가지고 돌아갔을지 짐작할 뿐이다.

전시를 돌이켜보며 빈틈이 필요한 오늘을 떠올린다. 마스크 뒤로 두려움과 막연한 희망을 떠안은 혼란스러운 표정들이 있다.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은 틈의 부재에서 오는 건 아닐까. 낮동안 꾸역꾸역 머금고만 있었던 것들을 느리고 길게 곱씹을 수 있는 어스름한 정적이 감도는 곳. 정적은 그렇다면 더 잘 들을 수 있기 위함이다. 아주 잠시 모든 것으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상상해본다. 그리고는 다시 멋쩍게 돌아올 것이다. 이정도면 됐어, 하고.



김성원

미술사와 문학을 공부하고, 아트선재센터 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참고자료

6-8(2014) 리플렛, 서울: 아트선재센터 발행
6-8(2014) 보도자료, 아트선재센터


  1. 한병철, 『타자의 추방』, 2017, 문학과지성사, p.119. 

  2. 아트선재센터, 6-8(2014.02.15-2014.03.29) 결과 보고서, 2014 

  3.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1941). 바벨의 도서관에 보관된 책들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어딘가에 꽂혀있을 궁극의 진리가 적힌 책을 찾아 죽을 때까지 이 공간을 헤매는 사람들도 있다. 웹페이지로도 구현된 바 있다. (https://libraryofbabel.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