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머니, 뉴 시티-인간의 변하지 않는 뇌(Old money, New city- Same Human Brain), 2017, mixed media, 155 x 250 cm

국적 없는 바이러스를 찾아서, 김보경

열람 시간: 27분

우한, 대구, 이태원, 뉴욕… 코로나19는 ‘도시’를 점령한 바이러스였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또 다른 도시로 확산되지 않도록 도시의 경계를 봉쇄하고, 나아가 국경까지 폐쇄했다. 봉쇄 조치는 인간이 더 이상 자유롭게 도시와 국경을 이동하지 못하게 했지만, 국적이 없는 바이러스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바이러스에 의해 모든 일상이 바뀌고 나서야 인간은 인류가 도시를 건설하고, 극단적인 생산, 개발, 세계화의 확장을 추구해온 욕망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3년 전 아트선재센터는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결과로 거대하게 개발되어 온 도시와 돈, 이와 관계된 문제들을 탐색하는 파레틴 오렌리(Fahrettin Örenli)의 개인전 국적 없는 돈(Money without Nationality)을 개최한 바 있다. 오렌리는 지난 10년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터키 이스탄불, 서울을 오가며 도시와 돈, 권력이 인간의 미래에 어떤 방향을 제시해왔는지 추적함으로써 전시를 구성했다. 나는 그의 작업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며 과거의 욕망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의 방향과 기준을 찾아가는 2020년의 여정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을 마주하기

음모의 벽>ANARTIST(Conspiracy Wall > ANARTIST), 2004 – 2014, site–specific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사진: 김상태
왼쪽: 대자연, 또 하나의 거짓 도시의 탄생 I(Mother Nature, Birth of Another Bastard City I), 2016, mixed media on canvas, 150 x 199 cm
오른쪽: 올드 머니, 뉴 시티-인간의 변하지 않는 뇌(Old money, New city- Same Human Brain), 2017, mixed media, 155 x 250 cm

세포가 분열하듯이 묘사된 인간과 곳곳에 보랏빛이 퍼진 도시 풍경, 이를 갉아먹는 어떤 생명체와 콘돔에 그려진 빌딩 도시 설치 작업은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2020년 풍경을 연상케 한다. 전시장을 둘러싼 크고 작은 드로잉은 전시의 주제가 비정상적인 ‘도시’라는 것을 전달한다. 작가는 인류가 ‘돈’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으로서 도시를 발전시키고, 도시는 그곳에서 만들어낸 지식을 더욱 편리하게 관리하기 위한 곳으로 개발되어왔다고 보았다.

파레틴 오렌리는 전시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넘어, 30분에 한 번씩 전시장 조명이 모두 꺼지도록 연출함으로써 작품이 어둠 속에 숨는 효과를 의도했다. 이때 전시 공간 내에 등장하는 사운드와 빛은 관객들이 새로운 감각으로 현실을 느끼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Equation = TIME and/of Evolution in City>, 장소 특정적 음향(작가가 쓴 시에 기반), 조명 설치. 라디오 퍼포먼스 및 음향, 조명 테크니션: 권병준, 즉흥 보컬: 박민희, 2017 / 촬영: 김상태

처음에 관객은 예고 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갈 길을 잃고 당황한다. 잠깐 사이 어둠에 대한 공포감이 느껴질 때,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주문을 외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전시장을 메우면 두려움은 호기심으로 변한다. 이때 작품 감상을 위해 설치된 의자로 보였던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벤치에서는 서서히 “money” “without” “nationality”라는 단어가 빛을 낸다. 이 단어들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 모형의 설치 작품이 환한 빛으로 주변을 밝힌다. 멀리서 도시 속의 빌딩처럼 보였던 작품은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콘돔 위에 그려진 이미지일 뿐이다. 그 반대편의 벽에 새겨진 알파벳 퍼즐은 밝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단어들 “MONEY” “INDEPENDENT” “STRONG” “DEATH” “BESTFRIEND”가 형광 빛을 내며 다른 단어들을 어둠 속으로 가라앉힌다. 공중으로 떠오른 단어들과 어둠에 숨겨진 작품들을 조합해 돈과 함께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게 성장한 도시와 자본에 대한 욕망에 가려진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하이힐(HIGH HEELS), 2016, mixed media installation, 80 x 140 x 200 cm. 사진: 김상태

이는 터키 작가 외메르 세이페틴(Ömer Seyfettin, 1884-1920)의 단편 소설 『하이힐』(1922)의 줄거리인 문제의 부각과 회피에 대한 은유적 연출이다.

한 젊은 여자가 66세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다. 남편이 죽고 난 후에 하티제 귀부인은 대저택에서 하인들에 둘러싸여 여생을 보낸다. 부인은 집안에서도 하이힐을 신는데, 하루는 허리 통증이 심해져 의사를 찾는다. 의사는 높은 굽이 통증의 원인이라며 하이힐을 신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티제 귀부인은 대저택에서 여러 하인을 거느리고 사는데, 충실하며 신뢰가 가는 이들을 부인은 가족에 버금가는 존재로 늘 여겨 왔다. 그런데 하이힐을 신지 않기로 작정한 날부터 하인들이 저를 욕하는 말이 들려오고 물건을 훔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제껏 하이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존재를 알렸기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게 된 것이다. 하티제 귀부인은 집안의 하인을 모두 해고한다. 그로부터 2년간 그녀는 주기적으로 하인을 새로 고용하고 다시 해고하는 수고를 거듭해야 한다. 끝내 이에 지치고 만 부인은 결국 집에서 다시 하이힐을 신기 시작한다.1

이처럼 『하이힐』은 문제에 대해서 인정하고 마주하려 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을 다루는데, 전시는 이 소설의 줄거리와 연결된다. 소설 속 하티제 부인처럼 지난 5개월간 전 세계는 문제가 있음에도 눈을 가리고 회피해오다 바이러스의 대유행, 팬데믹을 겪게 되었다.

2019년 12월 초 중순에 중국 우한에서 처음 원인 미상의 바이러스가 폐렴을 유발하고 전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인지한 몇몇 의사들이 위험성을 알렸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이 사실을 은폐했고, 이는 폭발적 확산의 시발점이 되었다. 중국 정부는 전세계로 확산되고 나서야 초기 바이러스 출현을 보고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후회한다고 밝혔다. 이런 일은 중국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선진국으로 지칭되던 많은 나라들은 국경을 걸어 잠그고 국민들의 격리 조치로 사회, 경제가 멈추고 나서야 잘못해온 것들을 인지했다. 환경 오염이나, 공중 보건, 의료 격차, 이방인에 대한 차별 등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왔지만 이런 문제들은 경제 발전과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 늘 뒷전이었다.

맨 처음 바이러스가 발견 되었던 사실을 감추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우한을 봉쇄하기보다 빠른 검사와 치료로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오렌리가 말했듯이 도시가 살아있는 유기체라면, 그 시간 동안 인간 세계의 불을 잠시 끄고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라는 신호를 준 것이 아니었을까?


권력을 지도화(Mapping) 하기

오렌리는 도시를 거대하게 키우고 발전을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권력을 물리적인 대상들에서 추적하고 시각화했다. 전시장의 한 쪽 벽면에는 전 세계의 석유,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지형도를 나타낸 동서양 송유관(West-East Pipe Line)이 있다. 작가는 파이프라인의 이동 흐름을 국가간 문제를 품고 사는 지역이라고 보았다. 시리아내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파이프라인과 관련해 많은 문제가 있었던 북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과 터키의 테러리즘, 통행 금지, 개발 제한 등과 같은 문제들이 이 지도와 연관이 있다. 파이프라인의 흐름은 곧 권력의 이동 경로이기도 하다.

동서양 송유관(West-East Pipe Line), 2004 – 2014, wall drawing, dimensions variable. 사진: 김상태

그가 권력을 ‘지도화(mapping)’했던 방법과 유사하게, 코로나 시대의 우리는 바이러스를 지도화했다. 폭발적인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공포심과 확진자와 동선이 겹칠까 봐 불안한 마음을 덜기 위해 기관뿐 아니라 개인들도 실시간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인포그래픽과 지도들을 공유했다.

그 중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제작한 COVID-19 대시보드2는 전 세계 확진자, 사망자, 완치자 수치를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이 지도는 공개된 다른 많은 데이터 중에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확실한 인포그래픽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확진자 수에 따라 세계 지도에 빨간 점을 표시하고 있어 바이러스가 몸에 퍼진 것 같은, 혹은 독이 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우한과 한국을 중심으로 분포했던 빨간 점들이 전 세계로 뒤덮이면 어쩌나 하는 상상은 5개월 사이에 현실이 되었다. 한 눈에 보아도 거대한 빨간 점들이 빼곡하게 뒤덮인 지역들은 단순히 바이러스 확진자 수 이면에 존재하는 권력과 자본을 상기시킨다.

2020년 2월 24일자 COVID-19 대시보드, 존스 홉킨스 대학 코로나바이러스 리소스 센터 제작.
The Moodie Davitt Report News Room, COVID-19 Update: South Korean toll soars as global pandemic fears rise; China warns citizens against US travel, 2020.02.24. 발췌. https://www.moodiedavittreport.com/covid-19-update-south-korean-toll-soars-as-global-pandemic-fears-rise-china-warns-citizens-against-us-travel/
2020년 7월 7일자 COVID-19 대시보드, 존스 홉킨스 대학 코로나바이러스 리소스 센터 제작

오렌리는 석유, 가스 파이프라인뿐 아니라 전 세계 권력의 정점에 있거나, 부를 가진 사람들의 얼굴을 마스크 팩으로 만들었다. 펼쳐지고 도려내진 마스크 팩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우습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시선이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아트선재센터의 전시 공간 내에서 이들의 시선은 앞서 살펴본 동서양 송유관이 설치된 벽면과 마주보도록 설치되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본주의를 이끌어 온 이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의 삶이 끝난 이후에도 구축되고 지속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국적 없는 돈(Money Without Nationality), 2016, 40 portraits, mixed media, 33 x 48 cm. 사진: 김상태

나무의 지식을 전달하는 자

오렌리가 쓴 시 ‘푸른 신장 결석과 세균/기생충의 흔적’으로부터 시작한 드로잉 나무의 지식을 전달하는 자에는 반도체 칩을 연상케 하는 배경에 인간 형상이 있고, 그 안에는 어떤 푸른 존재가 있다. 이 시의 내용은 인간은 우주를 숙주 삼아 기생하는 세균/기생충이고 세균의 허울을 지적으로 순수한 나비로 포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식의 생성과 소멸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통해 바라보고 인간, 나뭇잎과 같은 자연물과 기계 내부의 모습을 결합했다. 작가는 도시의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낸 상업적이고 막대한 지식들은 언젠가 잎 파리가 떨어지고 사라지는 나무와 같다고 보았다.

나무의 지식을 전달하는 자(The Man Carries Knowledge of Tree), 2016, mixed media, 125 x 170 cm. 사진: 김상태

푸른 신장 결석과 세균/기생충의 흔적

이봐요
오늘의 지식인이여!
당신은 이 우주가
실은 거대한 생명체에 다름아니며
인간은 세균/기생충이라면 믿겠습니까?
푸른 신장 결석 위에 살며
그 생명체의 어둑한 가운데서
세균의 허울을 버리고
지적으로 순수한 나비로 분하고 있다면,
그리하여
신체 결석에 드릴을 박기에 앞서
개체 내 공간 깊숙한 곳들을
탐사 중이라면 믿겠습니까?3

코로나를 겪으며 온라인으로 옮겨간 일상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다. 개인적으로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방문해야만 참가할 수 있었던 심포지엄이나 토크 프로그램 등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근무시간에 유튜브를 통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학기 동안 온라인 강의로 대면 수업을 대체해 온 대학교에서도 학기가 마무리 될 때쯤 학생들이 녹화된 강의를 원하는 대로 돌려보고 복습하며 과제와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관객 없는 미술관과 학생 없는 학교가 길어질수록, 온라인 환경에 적응이 되기보다 얼굴을 맞대고 부대끼며 겪는 배움 너머의 경험에 대한 그리움만 더욱 커져간다.

비대면으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기술은 분명 더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발되어 또 다른 형태의 권력과 경제 구조를 낳을 것이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도시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될지, 아니면 보기 좋은 허울이 되어 문제를 보지 못하도록 눈 가리는 바이러스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코로나를 겪으며 얻은 확실한 깨달음에 의하면 적어도 예측 가능한 미래의 문제를 더 이상 눈 감아 넘기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김보경

회화와 미술이론을 공부했으며 현재 아트선재센터 학예팀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참고자료

  • 김선정 외 4인, 『파레틴 오렌리: 국적 없는 돈』, 서울: 아트선재센터, 2017
  • 파레틴 오렌리: 국적 없는 돈 보도자료 (2017), 아트선재센터.
  • 파레틴 오렌리: 국적 없는 돈 아티스트 토크 & 투어(2017.11.03.) 녹취록, 아트선재센터.

  1. 김선정 외 4인, 『파레틴 오렌리: 국적 없는 돈』, 서울: 아트선재센터, 2017, p.71 

  2.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CSSE팀이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등의 데이터를 이용해 코로나 바이러스 현황 지도를 제작했다. 2020.05.27. 접속 https://coronavirus.jhu.edu/map.html 

  3. 김선정 외 4인, 푸른 신장 결석과 세균/기생충의 흔적 『파레틴 오렌리: 국적 없는 돈』, 서울: 아트선재센터, 2017, p.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