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 슬픔, 김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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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는 슬픔

나는 이렇게 들었다.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닫고 나서 시를 읊었는데 그 내용이 이러했다고 한다.
슬픔의 집을 지은 자, 더이상 짓지 않게 하리.

2020년 1월에 선보인 슬픔의 집은 페루의 아마존에서 만난 친구 ‘민’이 내게 건네 준 게임 파일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얻게 된 극심한 통증을 뇌 가소성을 이용해 치료하고자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있던 중이었다. 게임 플레이도 치료의 일환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민은 본인이 플레이하기 위한 비디오 게임을 만들고 스스로 그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했다.
나는 민이 만든 게임을 전달받아 플레이하며 ‘집'에 대해 떠올렸다. 당시에 남미 원주민이 생각을 기록하는 방식과 그것의 변형(transformation)에 대해 조사하던 나의 작업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어 나는 민의 게임에 나의 이야기를 나래이션으로 덧붙여 게임을 완성했고, 그 게임을 스트리머가 무대에서 플레이하는 슬픔의 집이란 공연을 만들었다.

9월 4일부터 8일까지 벨기에의 쿤스텐페스티벌(Kunstenfestivaldesarts)에서 다시 공연되는 슬픔의 집은 오프라인 극장과 온라인 극장에서 동시에 진행된다.1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 함께 모여 영상을 시청하는 문화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Barcraft’라고 사람들이 마인크래프트에 모여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같이보거나 Garry’s mod의 멀티플렉스 극장에 모여 유튜브 영상을 같이 시청하는 것 등이다.2

우리는 마인크래프트에 극장을 짓고 전면에 대형 스크린을 달아 오프라인 극장의 공연에서와 마찬가지로 게임 플레이 영상을 가져와 트는 공연을 기획했다.

오프라인 극장에서의 슬픔의 집
마인크래프트 온라인 극장에서의 슬픔의 집

그러기 위해 먼저 마인크래프트에 극장을 지어야했다. 마인크래프트는 대표적인 샌드박스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레고처럼 블럭을 하나하나 쌓아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대규모 건물이나 컴퓨터, 태양계를 만들어 버리는 수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42명의 마인크래프트 건축 전문가들로 구성된 GBF Studio와 함께 극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번 작업을 위해 GBF Studio에서 3명의 건축가와 1명의 개발자가 참여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약간 무너져내린 고대 그리스식 원형극장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극장 주변에 관객들이 쉴 수 있는 정원과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바(Bar), 공연의 조명과 영상 재생을 제어하는 조정실 등을 만드는 것이 골자였다.
우리는 마인크래프트에서 만나 건축물의 크기를 정했다. 내가 처음 건축현장에 방문했을 때 이미 어느 정도 극장 건축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맵에서 실제로 보니 크기가 다소 작아 더 큰 극장을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대신 처음에 지은 극장은 작가와의 대화 등 부대행사가 열리는 소극장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오프라인 공연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유행으로 모든 부대행사가 없을 예정이다.

전체 맵 항공샷 (촬영 : GBF Studio-김민석)

건축은 커다란 틀을 만들고 이후에 디테일을 추가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갖게되는 느낌이 중요했기에 웅장하게 펼쳐지는 느낌을 주고자 극장 전면은 건축에 잘 쓰이지 않는 다이아 블록과 에메랄드 블록으로 크기를 표시해가며 비율을 정했다. 표시된 틀을 바탕으로 기둥과 아치 등을 덧붙여 나가면서 건축물의 디테일한 텍스쳐를 구현했다. 이 과정으로 완전한 형태의 극장을 먼저 완성하고, 이후 직접 건축물을 부숴가며 세월에 의해 손상된 듯한 극장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극장 작업이 완료된 후에는 극장이 배치되는 배경인 섬과 바다를 제작했고, 섬에 나무를 심고 길을 조성하고 조경을 꾸미면서 건축 작업을 마무리 하였다.

완성된 소극장 전경 (촬영 : GBF Studio-김민석)
완성된 바 전경 (촬영 : GBF Studio-김민석)

건축이 끝난 다음에는 기술 시스템 구축을 위한 작업이 이어졌다. 우리가 영상 재생을 위해 사용할 웹 디스플레이 모드의 설치와 공연 서버로의 접속을 도와줄 런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관객들이 관람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다.

야외극장이니만큼 공연의 조명은 자연광을 이용하기로 했다. 해가 지면 공연이 시작해서 해가 뜰 때 쯤 공연이 끝나는 것이다. 개발자님은 이를 위해 해를 제어할 수 있는 버튼들을 조정실에 만들어주었다.

건축 현장을 방문하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다. 실은 블럭을 하나하나 쌓는 엄청난 노동의 현장인데 로널드 맥도날드의 모습을 한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건축물을 감상하고 정원을 거닐며 사진을 찍었다. 5년 전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 작업을 할 때 마인크래프트에서 Far Land라는 세상의 끝을 향해 수 개월째 걷고있는 플레이어를 만나 같이 세상의 끝을 향해 걸으면서 인터뷰를 할 때도 나는 저런 모습이었던 듯 싶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 제작팀과 건축팀은 민이 게임을 만들 때 했을 법한 집을 짓는 과정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제 내일이면 극장이 완성될 것이다.

서버에 홀로 가만히 서 있는데 문득 해가 뜨는 것이 보였다.

슬픔의 집 게임 속 대사가 떠올랐다.

“민은 지워지기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만다라처럼 생각을 담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했어. 그래서 그 공간을 온라인에 건축하기 시작했지. 염원을 담아 돌탑을 하나하나 쌓거나 여러 대에 걸쳐서 피라미드와 대성당 같은 거대 건축물을 만드는 것처럼 그도 정신이 깃든 공간을 컴퓨터로 하나하나 만들어갔어. 공간이 곧 그의 생각의 더미이자 이야기였어.“



슬픔의 집의 온라인 퍼포먼스는 벨기에 쿤스텐페스티벌(Kunstenfestivaldesarts)과 공동으로 제작하였고, 9월 4일, 5일, 6일에 공연된다.


김지선

사회 시스템과 문화, No man's land(법, 규범, 국경에 의해 생겨난 물리적 영토 내에서의 다층적 공간, 시스템에 의해 배제된 공간, 온라인 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작업을 통해선 나/세계를 감각하는 문제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