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Nodamage, 임정수

결심했던 것과 다르게 한국의 소식을 자주 읽었다. 이전까지 없었던 센 놈이 온다는 기사도 보았고, 모든 창문이 깨질 것이라는 문장도, 역대급이라는 단어도 보았다. 어떻게 준비해도 이번엔 막을 수 없을 거라는 태풍들에 대한 뉴스도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대단히 무시무시한 그 태풍이 경로를 바꿔 동해를 지나쳐 갔다거나 수도권은 피해 없음, 또한 도심을 제외한 일부 지역에서 입은 침수 피해에 대한 보도를 보았다. 태풍이 지나고 무너진 지붕에 소들만 남아있는 사진을 보았는데, 그 옆에는 소와 말이 물에 빠지면 소가 살아남고 말이 죽는 이유를 열심히 분석해 놓은 내용도 있었다.

한국에 관한 뉴스들은 각성제와 같아서 나는 그것을 매일 필요로 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아무것도 각성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사고를 무감각하게 만들었지만 위벽을 긁어내는 한이 있어도 커피를 마시고 순간을 연장하는 것처럼 온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때까지 사고와 재앙에 대해 듣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굽어가는 목과 허리를 걱정했다. 조금이나마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한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창문 앞을 서성이며 바깥 풍경을 보는 게 다였다.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순간은 매우 짧고 드물었으며, 아주 가끔 큰 행사를 치르듯 숲속을 뛰거나 집안에서 근육을 살살 다듬는 일이 내가 내 몸과 한 전부였다.

먹을 것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외출하지 않고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가 후에는 아예 책상을 창문 앞으로 옮겨서 의자에 앉기만 해도 창문 밖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방 구조를 바꾸어 버렸다. 책상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면 나무와 작은 정원이 바로 보였는데 그것은 앞집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 정원에는 검은 고양이와 갈색 점박이 고양이도 살았지만 그 둘은 함께 다니지는 않았다.

한국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읽고 나면 집 앞의 정원에 태풍이 온 것 만 같았다. 실제로 내가 사는 곳에도 여름 동안 잦은 강풍과 비가 왔으나 장마의 개념이 없는 곳이어서 인지 사람들은 그것을 장마, 태풍이라 부르지 않고 바람이 많이 분다, 비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장마, 태풍, 범람, 침수라는 단어가 있었으나 그것은 다른 지역의 사건을 일컬을 때 쓰는 용어이지 스스로가 사용하기 위한 용어 같지 않았다.

친구가 구름의 모양을 보고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 예상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구름의 모양과 위치를 보고 대기의 상태를 추측하는 원리였다. 구름의 상태에 따른 고유의 이름들이 있었고 친구는 그것들을 알려주었다. 친구가 그 이름들을 말할 때 나는 그 단어들을 열심히 따라 부르며 외우기는 했으나 사실 내일 비가 오든지 태풍이 불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여름 내내 비가 오다가 바람이 불고 잠시 해가 났다가 다시 태풍같이 강한 바람이 왔다가 구름이 몰려갔다가 해가 뜨고 갑자기 밤이 되는 매일이었다. 날씨가 맑든 비바람이 몰아치던 세상이 무너지든 그것이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이 되었다.

집안에 앉아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드는 여러 이야기들을 읽었다.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가 녹아 내리고 있다거나, 갈라파고스 제도를 가득 채운 해양 쓰레기 문제에 대한 이야기, 이미 인간의 혈액을 따라 온몸에 퍼져있는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정보, 암을 유발하는 여러 가지 음식들, 우크라이나 원전 사태 후 벨라루스로 날라온 피폭 물질, 태평양으로 흘러나갈 준비 중인 원전 폐기물, 천연가스 소유권을 둘러싼 지역 분쟁, 폐기되는 동물들과 동물 학대 콘텐츠로 운영되는 채널들, 몇 십 년 뒤에 밝혀진 무죄 판결과 곧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범죄자, 한국에 온 뒤 자살을 하는 네팔 노동자들, 여전히 사회적 공식적 신분제를 사용 중인 인도의 계급제 시스템, 할례와 투쟁 중인 여성들의 삶,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를 해야 했던 고려인들의 역사와 그들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었다. 5월 8일은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인데 어쩌다 한국의 어버이날이 되었는지 찾아보면서, 어버이들은 왜 스스로를 수많은 위기와 잔인한 피해로 인해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아온 한의 민족이라고 규정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묻고 싶었다. 존댓말과 반말이 수평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용되는 이유에 대해 찾아보다가 별 유용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그만두었다. 여러 재앙의 자료들은 대개 그와 반대되는 관점을 포함한 자료들과 동시에 발견되는데, 그런 반대 견해를 담은 자료들에서는 종종 ‘피해 없을 것’이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재앙에 대한 이야기들은 염분과 같아서 매일매일 필요한 영양분처럼 몸을 필요로 했다. 염분을 다 섭취하고 나면 이렇게 책상에 앉아 이런 얘기나 알아보고 있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지 스스로의 모습을 한심해하며 분리수거를 하러 가곤 했다. 홀 몸으로 집안에만 있으니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구체적인 쓰레기의 양을 매일매일 확인할 수 있었다. 성인의 평균 식사량 보다 꽤나 적은 양을 섭취해도 운용 가능한 가성비가 좋은 몸이라고 스스로 자부했었는데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쓰레기를 만들면서 사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만들어진 쓰레기들은 심지어 한 번에 버릴 수 없어서 분리수거를 위해서는 몇 번 나누어 외출을 해야 했다. 가성비가 좋은 내 몸 안의 혈액이 이미 플라스틱과 거의 하나가 된 상태라길래 세제라도 덜 마시며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퐁퐁을 비싼 유기농으로 바꿨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이미 두 달 전 모두 다 떨어졌으나 한국의 가족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약을 받지 못했다. 지금 사는 곳은 지난 겨울 이후부터 한국으로부터 들어오는 택배를 일체 받지 않지 않는다. 갑자기 약을 구할 방법을 찾지 못하자 의사 선생님은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셨다. 몸 안에 있던 진주같이 매끈하고 똘망똘망하게 아름다웠던 돌멩이 사진이 떠올랐다.

태풍이 불자 창문을 통해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고 이곳과 한국의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비교하며 사람들의 수를 세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나의 가족이나 친구들 중에 나에게 이러한 소식을 전한 사람이 없었고 나 또한 방에 앉아 태풍이나 바라보았다. 거대한 숫자는 왜 나를 비켜갔는지 또 나를 대신한 목숨들은 왜 이렇게나 많은지 물어볼 수 없어 무서웠다.

밤새 태풍이 불고 난 다음날 아침에는 나무들의 모양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창문 앞 정원에 까치 4마리가 모여있었고 그들은 나무 안쪽의 한쪽 구석을 보면 웅성거렸다. 내 눈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지 않았고 내가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는 어제까지 펴있던 어떤 꽃이 사라졌다는 것이 전부였다. 까치들은 서로에게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한 둘씩 날아가 버렸고 나도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빈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 화가 잔뜩 난 쥐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그 쥐가 너무나도 많이 화가 나 있어서 어서 뚜껑을 다시 닫았다. 우선 쥐에게 물과 먹을 것을 주며 그것을 달래 보기로 했다.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물과 음식을 넣어주면서 쥐를 빠르게 관찰했는데 그것은 아직 아기처럼 보였지만 너무나 성나 있어서 얼핏 보면 주름 덩어리 같아 보였다. 우선 쥐를 내보내기 위해 집안의 모든 음식을 치우고 창문을 모두 열었다. 냄비를 창문 앞에 두고 뚜껑을 열며 30분 후에 돌아올 테니 그 안에 꼭 밖으로 나가라고 쥐에게 말하고 장을 보러 나갔다.

장을 보고 난 후에도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어서 야외정원이 달린 카페에 들어가 시간을 때웠다. 거의 두 시간쯤 지나 집으로 돌아가면서 쥐가 냄비에서 나가 꼭 어디론가 사라졌기를 바랐다.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집안에서 변한 것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장을 보러 나가기 전 모습과 똑같았다. 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것의 발자국 같은 것도 없었다. 창문 근처에 두었던 냄비를 씻기 위해 그것을 들어 올렸을 때,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그 쥐를 다시 발견했다. 쥐는 여전히 화가 나있었지만 나를 공격하려 하지도 않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뚜껑을 다시 닫으려다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것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 긴 막대 끝에 음식을 매달아 냄비 안에 넣었다. 막대를 냄비 안에 넣자 쥐는 그 음식을 본 척도 하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쥐는 나에게 자신이 받은 피해를 내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물었다.

No Nodamage, single channel video, color, 46sec, 2020, Jeongsoo Lim

 

임정수

지은이 (임정수는)
전문적으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행할 수 있는 직업인이다.
체포된 자, 이송한 자,
취득한 자, 공여한 자,
의사 능력은 있으나 행위 능력이 없는 자,
위험을 발생시킨 자,
유가증권,
정을 아는 자,
알아낸 자,
허가 대상, II.
자연인(으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여,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의 유지와 행위의 객체(는)
진실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기 또는 타인의 권리를 실행하기 위한
행위(는) 증거가 필요 없으며,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6) 시, 소설 등의 예술작품,
(8) 모래 위에 쓴 글,
흑판에 백묵으로 쓴 글(은)
위법성 조각 사유의 전제 사실에 대한
착오의 문제인
오상 방위로서 책임 고의가 조각되어

‘기억할 수 없다’ 또는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