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아, 욕망과 마취(Desire and Anesthesia), BTA 자료집 발췌, 아트선재센터, 2009.

멈춤을 통한 연결, 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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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택트('언택트(Untact)'와 '연결(On)'의 합성어)가 뉴 노멀(New Normal)이 된 요즈음, 마스크 없는 맨 얼굴로 사람들을 마주했던 지난 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지곤 한다. 특히 ‘만남’이 주된 매개체인 교육의 장은 이러한 변화를 직격으로 맞았다. 대면을 통해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몸짓과 말을 통해 드러난 뜻을 파악하고 숨은 뜻은 헤아려 보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마스크가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정도가 아닌 마스크로 인해 다채로운 표정은 숨어버리게 되고, 서로 거리를 두게 만들며, 손은 맞잡지 못한 채 일정한 거리를 두기에 이르렀다. 안전을 위해 물리적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데에다 서로 조심하자는 무언의 약속이 굳어지며 심리적 거리까지 느껴진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예술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코로나 19 상황이 길어지면서 미술관 문도 확진자 현황에 따라 여닫기를 반복하고 있고 열어도 예전처럼 활짝 열 수 없는 상황이다. 미술관 방문의 제한은 관람객에게도 아쉽지만, 교육팀의 일원인 나 또한 교육의 전제조건인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 간의 거리 두기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관객들과의 대화가 특히 그립다.

코로나 19로 달라진 일상을 말하는 것마저 지칠 즈음, 출근길 버스에서 광화문 글판에 쓰인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는 백무산 시인의 정지의 힘을 보며 코로나 19 사태로 모든 것이 멈춰있는 요즘, 어쩌면 스스로는 멈출 수 없던 멈춤의 시간이 ‘성장을 위한 밑거름을 만들고 있는 기회의 시간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멈추니까 보인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리치료에서는 정신적 외상을 입은 환자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미술 활동을 할 때 오히려 강력한 정서에서 거리를 두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방식은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 중 ‘거리 두기’ 개념으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잠시 멈추어, 거리를 두는 것이 오히려 지나온 일에 대해 다시 돌아볼 기회로 느껴진다.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다양한 감상법을 통해 관람객들과 소통하고 특별한 의미를 창출했던 코로나 이전의 소중한 경험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나갈지 고민하며 성장해 나가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시대에 발맞춘 새로운 감각을 어떤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 깊은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기준을 다시 세우고 연결 짓는다. 과거와 현재, 아트선재센터 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을 나누며 참여했던 관람객과의 이야기들을 사례로 담아 서로의 거리를 좁혀보고자 한다.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예전처럼 마스크 없는 상태에서 맑은 공기와 햇살 속 서로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말이다.

함경아, 욕망과 마취(Desire and Anesthesia), BTA 자료집 발췌, 아트선재센터, 2009.

들어가기

미술관 교육프로그램은 미술관이 관람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수용 가능한 형태로 풀어내 체험과 감상, 표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이 첫걸음이다.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아트선재센터의 과거 1990년대 후반에서부터 2020년 현재까지 이어오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살펴보자. 아트선재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은 대부분 전시 오픈과 동시에 전시 연계 아티스트 토크, 큐레이터 토크와 퍼포먼스, 전시 해설, 워크숍, 특강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의 첫 교육 프로그램인 아트선재 교양 강좌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미술뿐 아니라 문학, 연극, 건축, 무용, 영화, 음악 등 예술 전반에 아우르며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제시하며 자유로운 토론과 소통을 제안하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의 첫 교양 강좌 프로그램은 1999년 봄, 임동창(음악), 이정우(철학), 홍상수(영화), 김봉렬(건축), 최정화(미술)가 강사로 참여해 영역별로 동시대 한국의 문화 생산 논리를 탐색한 우리 시대의 개념, 우리 시대의 문화이다. 첫 번째 강좌를 시작으로 같은 해 형식과 매체의 개념, 재료 미학 다시 보기 등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점검하고 미래의 향방을 가늠하는 자리를 선보였다.1 매년 한국이 당면한 사안들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역할을 하고자 하는 아트선재센터는 22년 동안 꾸준히 전시뿐 아니라 아티스트 & 큐레이터 토크, 독서클럽, 최근 이루어진 여름스터디 등 같은 방향성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그 목적을 이어오고 있다.

시간대별로 진행했던 도슨트(전시해설) 프로그램이 코로나 19로 중단되면서 ‘이번 전시의 작품설명 도슨트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몇 차례 받았다. 2002년부터 시작된 아트선재센터의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은 관람객들이 감상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더불어 도슨트 참여자에게는 전시라는 매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폭넓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불협화음의 하모니 연계 교육 프로그램 현장 모습, 아트선재센터, 2015.

도슨트 프로그램이 시작할 당시에는 문화 자원봉사자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소년, 대학생, 시니어 등 다양한 연령의 참여자들에게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제공하여 전문적인 도슨트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2

미술을 좋아하고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아트선재센터 청소년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사후 설문 조사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용기, 책임감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3 또한 주부였던 참가자들 중 일부는 미술관의 전문 도슨트로, 중학교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는 고등학생이 된 후 자신의 장래를 고민하면서 그때 만났던 강연자의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이 미술관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주는 동시에 미술관이 나아가 관람객에게 새로운 꿈을 꿀 기회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경우에 발달 단계에 있어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정도가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공간에서의 경험은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 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바이러스로 인해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지 못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전시 공간뿐 아니라 아트선재센터의 구석구석에 위치한 다양한 공간을 교육의 장소로 활용해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함께 어울리며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돕는 어린이 대상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미술관은 놀이터이다. 미술관은 놀이터는 아트선재센터의 대표적인 어린이 대상 교육 프로그램으로 2000년 작가와 함께하는 미술관은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일방적인 전시 감상이 아닌 체험과 그에 따른 특별한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을 담은 미술관은 놀이터는 전시와 연계된 놀이나 토론, 춤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획되어 현재까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운영되지 않지만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어린이들의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심화 과정으로 구성된 어린이 워크숍 BTA(Brainchildren Through Art), Pre BTA는 전시장뿐만 아니라 1층 라운지, 한옥, 2~3층 엘리베이터와 복도 등 다양한 공간을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며 아이들의 생각을 확장시키고 자유로운 상상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오인환, TRAnS, Pre BTA 5월 학습자료 발췌, 아트선재센터, 2009./
그림 속 미술관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있는 어린이를 찾아서 동그라미 표시를 하고 에티켓을 숙지해보세요.

2009년에 진행된 Pre BTA의 아카이브 자료에도 주말이면 미술관에서 환하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더불어 호기심 가득한 생각들이 눈에 띈다.4 지금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아트선재센터 본관 옆 한옥과 미술관의 공간에서 친구들과 규칙을 배우고, 미션을 통해 미술관 곳곳을 누비며 현대 미술에 대해 알아보고 나만의 시선으로 마음껏 작품도 만들어 봤으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더 완벽한 날 연계 교육 프로그램 현장 모습, 아트선재센터, 2013.

이 외에도 남아있는 교육 아카이브 자료집을 통해 미술관에서 친구들, 가족과 선생님 등 타인과 관계를 맺고 감정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술관의 교육 현장에서 물리적인 실체와 그로 인한 감각적 반응과 소통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본다. 일상 속에서 마주했던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어떤 존재와도 다양한 방식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호기심을 가지고 열린 마음을 심어주는 것, 결국 수업은 단순한 ‘내용’이 아니라 특정한 ‘경험’이다. 직접 만날 수 없는 지금, 돌이켜보면 미술관에서 동시대 미술을 아이들이 직접 눈으로 감상하고 체험해보며 타인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경험은 나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깨달음과 변화와 성장을 일으켰다. 우리는 그 성장에서 느꼈던 나만의 다양한 해석들5로 살아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어가기

멈춤의 시간이 와도 언제나 우리는 연결의 방향을 찾았다. 코로나 19로 달라진 일상들에 현실을 탓하기보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아트선재센터는 설립 초기부터 미술관을 벗어난 외부 공간을 전시나 교육 공간으로 사용하여 미술관의 의미를 확장하는 활동들을 지속해왔다. 2000년 처음 아트선재센터 교육팀으로 시작해 2004년 9월 독립연구단체로 활동한 인투뮤지엄(in2museum)과 2016년 아트재센터의 보수공사로 인해 휴관할 동안 교육 프로그램을 외부로 연장해 진행한 오프사이트 아트선재 프로그램이 그러하다.

휴관 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트선재센터의 휴관 기간에 독립적으로 미술관 교육 연구소를 설립한 인투뮤지엄은 약 5년 동안 아르코 미술관, 대안공간 풀, 세종문화회관 등 여러 문화예술 기관을 통해 아트선재센터에서 운영하던 프로그램을 어린이부터 청소년, 성인 등 다양한 대상들이 조금 더 친근하고 다원화된 방식으로 미술을 이해하고 사회문화예술교육의 전국적인 확산을 목표로 대중적으로 확장해갔다.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은 공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인 학교연계프로그램과 이벤트 그리고 개별 참여가 가능한 워크숍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미술의 내용과 형식에 관계없이 오감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시와 미술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6

최근 교육의 형태가 급변하고 돌봄에 공백이 발생하는 등 코로나 19는 학생들 간에 학습 및 심리적인 차이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코로나 19 이전에도 디지털, 인터넷 문화가 발달한 현재의 시스템으로 인해 문화적인 소외를 받는 지역이나 학습 격차 문제는 제기되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앞서 2000년 초반 해마다 환경적,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많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인투뮤지엄의 움직이는 미술관이다.7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들 모두 미술관 관람 후, 작품 앞에 앉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작품에 대한 느낌을 적으며 진지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움직이는 미술관에서 기획된 30여 회의 교육 프로그램은 적어도 아이들이 미술관을 낯선 장소가 아니라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흥미로운 공간으로 기억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였다. 앞으로도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내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더욱 다양하게 개발되어 미술관에 갈 기회가 적거나 전시를 자주 접할 수 없었던 관객에게 시공간 한계를 넘어 문화 향유의 기회로 확대될 수 있길 바란다.

오프사이트 아트선재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로 2016년 아트선재센터가 보수공사로 인해 휴관할 동안 미술관의 교육적 역할을 지속하고 프로그램을 미술관 외부로 연장하고자 시작되었다. 과거에 아트선재센터의 프로젝트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던 사무소(Samuso) 서가에서 준 양, 정연두, 멜빈 모티, 믹스라이스(조지은), 한스 D, 크리스트, 박경이 발제자로 참여하여 2016년 1월부터 6월까지 매달 마지막 수요일 저녁에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큰 창문 벽이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오프사이트 아트선재 서가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의미의 퍼블릭 프로그램이 창출되었다.8

아티스트 토크: 멜빈 모티, 아트선재센터, 2016.

2020년 현재에도 아트선재센터는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기존 대면 교육 프로그램 대신 비대면 온라인 환경에서 콘텐츠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QR코드를 활용한 전시 해설, 키트 배송 방식의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 가상의 환경 HOMEWORK,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한 강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대 미술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다시 글머리로 돌아가 보자.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마냥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잠시 멈춰 과거와 현재를 돌아봄으로 오프라인 요소가 강했던 교육 환경을 어떻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춰 풀어가면 좋을지 연결 짓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와 현재,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왔으며 위기를 기회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간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의미 있는 씨앗을 심고 저마다 소중한 것을 꽃피우길 빈다.

BTA 자료집 발췌, 아트선재센터, 2009.

고아영

서양화와 미술치료교육을 공부했으며 기획형 문화예술치유사업,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문화예술교육가로 임하고 있다. 현재 아트선재센터 문화예술교육사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1. 강수미 외 21인, 『커넥트: 아트선재센터 1995-2016』, 서울: 아트선재센터, 2018. p.86.  

  2. 강수미 외 21인, 『커넥트: 아트선재센터 1995-2016』, 서울: 아트선재센터, 2018. p.185.  

  3. 청소년 도슨트 프로그램 자료집, 서울: 아트선재센터, 2013. 

  4. Pre BTA 자료집, 서울: 아트선재센터, 2009. 

  5. 리카 버넘, 엘리엇 카이키, 『미술관 교육』, 서울: 다빈치, 2020, p.227. 

  6. 인투뮤지엄(in2museum) 홈페이지, 2020.10.21. 접속, http://www.in2museum.com/ 

  7. 인투뮤지엄(in2museum) 「움직이는 미술관_Traveling & Visit」 홈페이지, 2020.10.21. 접속, http://www.in2museum.com/index_edu.htm 

  8. 강수미 외 21인, 『커넥트: 아트선재센터 1995-2016』, 서울: 아트선재센터, 2018. p.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