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in Time』(2007), pp.140–145, 임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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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기억의 형상화와 민족의 심미화

I. 기억은 역사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역사는 인간의 과거를 다루지만, 종종 인간은 사라진 채 메마른 추상의 사실로만 과거를 드러내곤 한다. 한편, 기억은 산 자의 목소리를 통해 죽은 자의 소리와 모습을 되살린다. 기억은 주관적이며, 결코 역사처럼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인 양 뽐내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들을 논리 정연하게 재구성하여 일관된 체제로 보여주는데, 이를 위해서 일관된 체제로서의 과거에 균열을 내고 논리 정연한 재구성을 저해하는 기억은 역사에서 자주 사라진다. 소외되고 억압된 자들의 과거, 침묵을 강요당하고 지워진 목소리들을 되찾는 장치로서의 기억이 소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억은 역사라는 공적 영역에서 지워진 개인의 목소리를 되살려 복원해준다. 그 당당한 주관성 덕분에 기억은 공식화된 역사에 맞서 객관성의 신화를 해체하고, 인간을 복원한다.

개인의 기억은 생생하고 구체적인 동시에 상상력의 산물이다. 기억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흔적을 기억 주체가 갖고 있는 현재의 기대와 연결시킨다. 기억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주체의 기대와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과거만을 선택적으로 재현한다. 알레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의 용어를 빌린다면, 기억은 ‘저장기억’ - ‘비활성적 기억’에서 ‘기능기억’ - ‘활성적 기억’으로 탈바꿈할 때만 과거를 재현하는 매개체가 된다.1 개인의 뇌리 속에서 비활성적 저장기억이 활성적인 기능기억으로 바뀌는 배경에는 ‘집단기억’ 혹은 ‘문화적 기억’이 자리한다.2 집단기억 혹은 문화적 기억은 개개인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사회로 매개하는 기억의 공간이다. 저장기억과 달리 기능기억의 주체는 자유로운 개별주체이기보다는 국가나 민족과 같은 집단적 행동주체이다. 혹은 개인주체라 해도 집단기억의 매트릭스에 얽매인 주체인 것이다.

삶에 필요한 기억과 삶과는 거리가 먼 역사를 대치시키는 니체의 이분법, 공식적 역사의 헤게모니적 성격과 개별적 기억의 해방적 역할을 대비하는 이분법은 부분적으로만 옳을 뿐이다. 과거를 재현하는 장치로서의 기억은 비활성적인 저장기억이 아니라 활성적인 기능기억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구체적 정체성을 제공하는 모리스 알바쉬(Maurice Halbwachs)의 ‘집단기억’ 개념이나 다양한 문화적 형식을 통해 제도적으로 공고화되고 조직적으로 전승되는 아스만의 ‘문화적 기억’론은 개인의 기억 또한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기억임을 시사해준다. 기억은 생생한 체험을 통해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역사적 매트릭스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예술 행위를 통해 형상화되는 기억 또한 그 행위가 일어나는 매트릭스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기억의 구성주의라는 관점에서, 왜 특정한 기억이 예술로 형상화되고 또 그것은 어떠한 문화적 형식을 선호하는가를 분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것은 곧 예술이 특정한 사회적 프레임으로 기억을 짜는 데 어떻게 기여했고 또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다.

II. 개인의 일상적 기억은 학교 교육이나 매스컴, 역사적 상징 구축을 위한 공적 기념 행사와 기념일 등 다양한 공적 장치들을 거쳐 제도화될 때 한 사회의 ‘집단기억’ 혹은 ‘문화적 기억’으로 전화(轉化)된다. 제도화된 기억은 특정한 방향으로 개인의 욕망을 유도하고 조직화하며, 집단적 정체성을 투사하고 내면화시킨다. 반대로 어떤 기억이 의도적으로 망각된다면, 그 기억만이 망각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과 관련된 욕망들도 억제된다. 집단기억의 밑에서는 사람들의 삶과 욕망, 실천과 사유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기억의 정치학이 작동하고 있다. 제도화된 기억으로서의 집단기억 혹은 문화적 기억은 이미 정치적·현재적 요구를 반영한다. 거칠게 말해서 집단기억에 대한 담론을 생산해내는 주체는 대부분 근대의 국민국가였다. ‘국민’으로 만들어진 시민들은 자신들의 기억과 욕망을 접고 국가가 생산해 낸 기억과 욕망을 소비하는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근대 공간으로서의 박물관 또한 제도화된 기억으로서의 집단기억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공적 장치였다. 박물관을 통해 예술은 개인적 취향을 벗어나 민족적 미의식의 지표로 전화되었다. 민족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미적 체험은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기제였다. 개개인의 미적 취향은 ‘공동체의 감각’으로 간주되었다. 공통의 미적 체험을 통해 한 민족의 정서적 일체감을 고취하는 근대적 ‘공공영역’으로서의 박물관은 근대 국민국가의 대표적 기관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근대 국민국가의 전범을 제시한 프랑스에서 박물관이 ‘공동체 유산(patrimoine)' 개념의 탄생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3 19세기 유럽에서 활발하게 설립되었던 많은 박물관들은 국민을 교육하는 실용적 장소이자 ‘국보’를 보존하는 신성한 문화의 전당이었다. 국민교육이라는 목표를 위해 폐쇄된 진열 공간을 대신해 새로운 ‘전시(exhibition)’ 공간이 탄생했다. 이 새로운 전시공간에서는 시대적 순서에 따라 작품을 배치하는 관례가 수립되었다. 시대적 양식에 따라 분류된 회화 작품들은 곧 민족 정신이 전개되는 양상을 시각적으로 대변하는 것들로 간주되었다.

박물관과 더불어 미술관은 미술작품들의 시계열적 전시를 통해 한 민족의 정신적 궤적을 가시화하고 이에 질서를 부여했다. 그것은 곧 ‘집단기억’의 시각적 형상화를 목표로 하는 민족미술의 탄생을 의미했다.4 민족미술이 체계화되기 위해서는 박물관/미술관이라는 하드웨어와 더불어 미술사라는 소프트웨어가 요구됐다. 미술사는 미술을 장인적 기술로 간주했던 중세나 영원한 미를 추구한 신고전주의의 접근방식과는 발상을 달리하는 새로운 장르였다. 미의 이념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전개된다는 전제 하에서 미술사는 미적 양식의 변화 과정을 역사적 발전과정에 꿰어 맞추고자 했다. 국민국가를 역사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간주하는 근대 역사학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미술사는 자연스럽게 민족 미술의 합목적적 발전을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근대 국민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박물관, 미술관, 미술사의 발전은 형상화된 미에 대한 집단기억을 만들어냄으로써 한 국민의 집단적 미의식을 생산했다. 또 집단적 미의식은 거꾸로 개별 작품들을 재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미술작품의 미학적·역사적 평가를 통해 그 속에 구현된 작가 개개인의 기억과 체험은 집단기억으로 재구성되었다. 미술은 곧 ‘집단기억’의 시각적 형상화라는 목표에 종속됨으로써, 민족이 미술을 압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현대미술도 예외는 아니다. 민족이 미술을 압도하는 양상은 서로 다른 집단기억을 지향하며 첨예한 대립각을 형성한 1970년대의 모더니즘 미술과 1980년대의 민중 미술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예컨대 1970년대 모더니즘 미술의 대표격인 ‘단색화’는 그 옹호자들에 의해 흔히 ‘한국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의식적인 집단 운동’, ‘모더니즘의 한국적 양식화’, ‘본격적인 한국의 미적 모더니티(aesthetic modernity)’ 등으로 평가된다. 서구의 자극에 대응하여 전통을 접목시킨 우리 고유의 모더니즘 미술을 성취한 것이 바로 한국 단색화라는 것이다.5 옹호자들은 ‘단색파’를 한국 미술의 본질인 자연주의와 연결시키고, ‘한국적’ 표상기호로 해석되기에 적합한 형태와 기법, 색채를 모색한 미술운동으로 규정하는 등 정체성 담론의 문법에 충실하다. 즉 ‘단색파’에 각인된 집단기억은 한국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정서체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단색파에 비판적인 평가 역시 정체성 담론의 문법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단색파가 “제3세계의 주체성 확립이나 자기 정체 확인, 진정한 혁신을 달성하는데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는 미술이 집단기억의 시각적 형상화를 통해 민족적 정체성의 확립에 기여해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담론 질서를 단색파와 공유한다. 1970년대의 모더니즘 미술과 대립각을 이루면서 미술의 현실참여를 공언한 1980년대의 민중미술운동 역시 민족주의의 담론적 질서에 포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미술의 신사조를 대표하는 민족미술 협의회는 ‘전체 미술문화의 민주적 발전과 자주적인 민족미술을 정립하고 나아가 민족문화에 기여’하는 데에 그 설립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공동체적 삶’ ‘민중적 삶’ ‘민족미술의 창조적 발전’ 등을 지향했다. 진정한 민중성은 민족성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6

첨예한 대립각에도 불구하고, 결국 1970년대의 ‘단색파’와 1980년대의 민중미술은 한국인의 집단적 정체성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목표를 공유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추구했던 한국인의 집단적 정체성은 엘리트적 주체와 민중적 주체라는 집단주체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그 구체적 내용을 달리 한다. 또 추상 회화와 구상 회화라는 양식의 차이, 예술지상주의와 현실주의라는 관점의 차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집단기억의 시각적 형상화를 통해 한국인의 집단적 정체성을 추구함으로써, 민족주의적 담론 질서를 미학적으로 뒷받침하고 ‘민족의 심미화(aestheticization of nation)'에 기여했다.7 이들의 차이는 일차적으로 민족을 심미화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방식의 차이는 다시 민족미술의 주체라는 지위를 선점하기 위한 헤게모니 투쟁으로 소급된다. 20세기 한국의 현대 미술은 결국 ‘민족미술’을 선험적 실재로 인정하고 그 형식과 방향성에 대한 논쟁 구도에 갇혀 버림으로써, 권력이 주도하는 ‘기억의 정치학’에 포박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현대미술이 시도한 기억의 형상화 작업이 ‘민족의 심미화’라는 권력 프로젝트의 비의도적 혹은 결과적 공범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III. 예술을 포함해서 넓은 의미의 문화는 사람들이 삶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교환하는 일상생활의 방식이다. 이들은 특정한 민족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살아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살아갔을 뿐이다. 일본의 무뢰파 논객인 사카구치 안고(Sakaguchi Ango)를 패러디한다면, 이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지금 이곳에서 살아갈 뿐 이른바 민족 문화와 정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문화란 그 땅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8 제도화된 ‘집단기억’이 아닌 개인의 일상적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미술 혹은 민족미술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은 현실의 구체적인 삶과 유리된 관념적 구성물일 뿐이다. 민족미술의 본질을 찾고 규정하는 것은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경계 밖에 선 관찰자의 시선에 의한 것일 뿐, 현실적으로 그 문화 안에서 생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은 아닌 것이다. ‘비애의 예술,’ ‘중용,’ ‘자연주의’ 등등으로 간추려지는 한국미술의 본질이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외국의 관찰자들에 의해 먼저 발견되었다는 역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민족문화라는 관념이 상상된 허구라고 해서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삶의 역사적 퇴적물을 민족의 잣대로 재단하는 민족문화의 담론은 오늘날 한반도의 문화적 현실을 구성하는 지배적인 힘이다. 물질적 현실로서의 문화의 ‘실재(the Real)’와는 달리, 민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식된 현실(perceived reality)’로서의 민족문화 담론은 문화적 실천의 방향성을 주도하고 규정하는 인식론적 틀인 것이다. 대상이 담론적 접합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또 현실이 담론 속에서 구성된다면, 민족문화 혹은 민족미술을 허구의 산물이라 간단히 차치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문화 혹은 민족미술에 대한 지식과 담론이 구성되어 온 역사와 그 밑에 은폐된 권력의 작동방식을 드러내는 작업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현대 미술이 시도해 온 기억의 형상화 작업은 대체로 한국의 미학적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 듯 하다. 작가 개인의 내밀한 미적 체험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하기보다는 한국인의 고유한 미적 체험이라는 틀에 맞추어 재형상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곳곳에서 읽혀진다. 설혹 작가 개인의 내적 체험이 형상화되었다고 해도, 그 작품을 읽는 독법은 한국미의 구조 혹은 기본 성격 등의 집단적 미의식을 전제로 재구성하는 방식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의 현대 미술에서 형상화된 기억은 곧 한국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집단기억이었으며, 작가 개인의 내밀한 미적 체험과 그에 대한 기억은 억압하고 집단기억으로 재구성할 것을 강요받았다. 한국의 주류 현대미술은 집단기억의 형상화 작업을 통해 민족을 심미화함으로써, 민족주의의 지배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한국미의 본질이나 성격, 한국인의 미학적 정체성 등에 대한 논의와 작업들을 해체해 본다면, 1970년대의 모더니즘 미술과 80년대의 민중 미술사이의 간격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민족의 심미화 방식과 주체 설정에 있어서 이견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민족미술을 선험적 실재로 전제하고 개인의 내밀한 미적 체험과 기억을 민족의 집단기억으로 덮어버림으로써 민족주의를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미술 행위에 내재된 기억의 형상화 작업을 집단기억의 주술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은 곧 만들어진 주체에서 자율적인 주체로의 작가적 해방을 의미한다. ‘Somewhere in Time’의 전시에서 특히 아이다 마코토, 코큰 에르건, 임민욱 등의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집단기억의 균열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집단기억에 균열을 내기 위한 이들의 다양한 시도는 한국 현대미술이 집단기억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데 좋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미술에서 기억의 형상화 작업을 지배하는 집단기억의 해체는 비단 민족주의의 해체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만들어진 주체에서 자율적 주체로 곧게 서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소장. 최근작으로 기억전쟁 (2019), Mnemonic Solidarity-Global Interventions (2020, 근간) 등이 있다.


  1. Aldida Assmann, Erinnerungsraeume, 변학수 외 옮김, 『기억의 공간』, 경북대출판부, 2003, pp.164–183. 

  2. 집단기억과 문화적 기억에 대해서는 Maurice Halbwachs, On Collective Memory eng. tr by Lewis A. Cose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아스만, 위의 책 참조. 국내 연구로는 전진성,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휴머니스트, 2005 참조. 

  3. 임승휘, 「프랑스 '문화유산'과 박물관의 탄생」, 『역사와 문화』 8호, 2004, pp.9–28. 

  4. 전진성, 『박물관의 탄생』, 살림, 2004, pp. 37–52. 

  5. 단색화를 둘러싼 논의에 대해서는 김주원, 「1970년대 한국 단색화 논의 재고」, 『미학/미술학연구』 16집, 2002 참조. 

  6. 1980년대 미술사조에 대해서는 이인범, 김주원, 「1980년대 미술」, 『한국현대예술사대계Ⅴ』, 시공사, 2005, pp. 275–309 참조. 

  7. 이는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정치의 심미화' 패러디이다. 

  8. 니시카와 나가오, 『국경을 넘는 방법』, 한경구 역, 일조각, 2006, p.274.